2007년6월29일,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가 출시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키오스크 단말기나 모니터, 휴대폰 등에 터치기술이 적용되었었지만, 아이폰의 출시는 혁명적인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듯합니다.
'스마트폰'의 표준(?)을 만들어 지리했던 '스마트폰'에 대한 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터치' 전쟁이 시작되는 신호탄과도 같은 사건이었으니까요.
이미 터치휠을 적용한 아이팟을 통해 단순하고 직관적인 UI를 선보였던 애플이 아이폰에서 혁신적인 UI와 제품을 발표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감성적이고 상식적이며 직관적인 UI와 빠른 반응속도를 내어주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경쟁제품에 비해 특별히 빠른 CPU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이폰은 정말이지 남달랐습니다.
그리고 3년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느새 스마트폰은 대세가 되어있고 터치는 인터페이스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터치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그저 빠른 반응속도와 제품의 스펙에만 관심이 있었지, 왜 터치여야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단순하게 받아들이기만 했었습니다.
저는 얼마전에 신문에서 김정운 교수의 '남자에게'라는
칼럼을 읽고 터치인터페이스와 인간의 행동양식, 공통적인 습성의 상관관계에 대해 잠시나마 고민하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반론과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서로 만지고 만져지는 ‘터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의사소통 행위이며, 사람들이 아이폰,
아이패드에 열광하는 ‘심리학적 이유’는 바로 이 터치 때문이라는 김정운 교수의 주장에 저는 상당부분 공감합니다.
김정운 교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예전에 만났던 포터블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개발회사의 사장님과 제품에 대해 나누었던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좋은 소리를 내는 음향기기를 '옆에서 예쁜 목소리로 노래하며 속삭여주는 여인'에 비유하시더군요.
실제로 인터넷의 게시물들의 표현을 보면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이 녀석'이나 '이 아이', 고장났을 때 '사망' '운명' 등 의인화하는 표현을 심심치않게 접한 터라, 당시에 별 이견없이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받아들였었습니다.
'예쁜 목소리' '노래' '속삭임'등의 키워드와 함께 그 사장님이 말하고 싶었던건 '위안'이 되어줄 수 있는 제품이었던 것입니다.
'털없는 원숭이'인 인간이 현대사회에 갇혀 본성을 겉으로는 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위로할 방법을 추구하는 욕구가 제품에서 '터치'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찾아내고 만들어내게 된 궁극적인 배경이 아닐까 싶습니다.(아마도, 스티브잡스와 애플의 직원들은 이런 고민을 벌써 했겠지만요.)
당분간은 터치인터페이스는 전자제품과 인간의 교감에 있어 표준으로 자리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인간에게 제품이 보다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개발되겠지요. 음성인식이나 생각인식 등 제품이 내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반응하는 그런 인터페이스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조금 서글픈 생각 안드십니까?
인간과 기계가 교감하는 인터페이스는 점점 인간의 행동을 닮아가는데, 인간과 인간이 교감하는 인터페이스는 얼마나 세련되어져가고 있지를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제품은 인간의 삶을 보조하고 윤택하게 하기위한 도구일 뿐인데, 우리는 기계와의 교감을 위한 인터페이스를 더 고민하고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아이폰을 터치하고 아이폰의 반응에 감탄하고 아이폰에게 위로받는 동안,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는 눈을 마주하고 얘기나누며 '진짜 교감'을 할 수 있는 잠시의 시간도, 의지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우리 삶에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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