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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실거리와 커피에 대한 단상
    Design & Mktg./Culture & Shock 2010. 6. 1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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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마시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커피, 콜라, 우유, 쥬스, 차, 요구르트, 물.. 그리고 보리차, 옥수수차..
    일할때도, 놀때도..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항상 컵을 옆에 두고 있습니다.
    제 옆을 지키는 컵은 물론 빈 컵일때가 더 많습니다.
    다 마셔버리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많이 마시면 저녁에 잠이 잘 안온다고 얘기합니다만,
    저는 통 그런 일이 없습니다.
    커피를 넉잔 다섯잔을 마셔도 저녁에 잠만 잘오니까요.

    어렸을 때에 저는 생수대신 보리차나 옥수수차를 물로 마셨었습니다.
    거의 매일 어머니께서 2리터쯤 되는, 깡통로봇 헬멧정도 크기의 주전자에 수돗물을 담아 팔팔끓여 옥수수차나 보리차 한웅큼을 넣고 우려내셨었죠.
    겨울이면 따뜻하게, 여름이면 차갑게 마셨던 보리차의 구수한 향과 시원한 맛은 지금 생각해도 최고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딱히 마실거리에 대한 다양한 기호나 개념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어른들은 인스턴트 커피, 인삼차 아니면 집에서 직접만든 생강차, 아이들은 탈지분유 혹은 아주 가끔 큰 맘먹고 사주신 코코아정도였었으니까요.
    명절에 선물로 들어와서 처음맛보았던 유자차, 모과차를 마시면서 느낀 생경함은 어른이된 지금도 남아있어 그다지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마실거리가 생각나면 의례껏 간편하게 인스턴트 커피를 타 마시고 말지요.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마실거리가 참 많아졌습니다.
    특히나, 커피는 제조법도 종류도 다양하고 많아졌습니다. 거리를 돌아다녀봐도 프라프치노니 라떼니 하는 커피를 파는 각양각색의 브랜드를 가진 커피전문점이 한블럭에도 서너군데씩 있습니다. 4천원짜리 자장면을 먹고도 한잔에 5~6천원하는 커피를 사마시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큰돈을 주고 커피를 사마시지 않더라도, 미팅을 위해 업체를 방문하면 열에 여덟, 아홉은 하얀 종이컵에 노란색 봉지커피를 내주시곤 합니다.

    커피가 석유 다음으로 전세계의 무역량 2위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마시는 커피와 커피향의 음료의 양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전세계 국가 중 커피의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 2위는 독일, 3위는 일본, 한국은 11위라고 합니다. 아시아에서만 보면, 우리나라의 커피소비는 일본 다음으로 2위이지요.
    인구수로 나눈 연간 1인당 커피소비량을 보면, 일본은 2Kg, 한국은 1.75Kg이라고 합니다. 오십보 백보지요.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되었을까요?
    다른 마실거리도 많은데, 녹차전문점이나 유자차 전문점, 인삼차 전문점은 없고 외국브랜드의 커피전문점만이 성업하는 이유는 뭘까요?

    다양하고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저는 그 이유를 다른 마실거리나 먹거리도 마찬가지로 지난 35년간의 일제침략과 6.25동란 그리고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의 슬픈 현대사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차라는 것은 맛도 중요하지만, 맛있고 향기로운 차를 마시는 동안 보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 따끈한 차를 식혀가면서 마셔야만 하기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조심스럽지만 시간을 사치할 수 있는 당연한 명분이야말로 차를 마시는 큰 이유일 것입니다.
    "뛰면서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라는 어느 캔커피 광고문구처럼 휴식, 여유라는 단어로 대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중의 노동력은 물론이요,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일제에 의해 공출당하고 통제당했던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먹는 것, 입는 것 조차도 넉넉하지 않았을 것은 구지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오셨던 할머니 말씀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의식주가 통제 당하고 있는데, 쌀밥 한끼 벌어먹기도 바쁜데, 뛰면서 즐기는 차한잔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요?
    당시엔 차(지금은 죽은 송장에 숨을 불어넣는 것처럼 일부러 '전통차'라고 부르게 된)를 담그고 마실 수 있는 여유를 노동력과 삶과 함께 일본에게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관광자원으로 자랑하고 있는 보성의 차밭도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은 일본으로 녹차잎을 가져가기 쉽게 하려고 일본과 가까운 전라남도 보성에 일본사람들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화가나다못해 슬프기만 합니다.
    그렇게 한해 두해, 3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35년이라는 시간이라면, 그 시대를 살았던 3대는 모두 그 세월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광복 이후 겪었던 비극적인 전쟁과 극심한 가난은 우리에게는 차 한잔 마실만큼의 여유를 되찾기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으로부터 우리나라를 구해주고 밥굶는 우리를 보살펴주었던 미국과 우리나라의 유일한 롤 모델이었던 일본으로부터 우리삶의 모습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극심한 가난의 세월을 보내는 우리에겐 미군이 마시는 커피가 좋아보이고 부러운, 미군PX에서 흘러나온 미제 커피는 한참 '귀하디 귀한' 물품이었겠지요.
    사람은 태어나서 성년이 될때까지,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의 학습과 기억이 평생의 삶의 방식을 지배하게 마련인데, 그 시절의 기억과 삶의 방식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지금 우리세대까지 답습되어 전해지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영국사람들이 커피보다 얼그레이나 홍차에 쿠키를 곁들여 티타임을 갖는 것처럼, 중국사람들 손에 물대신 차를 담은 찻병이 떠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다도 혹은 다예라고 차를 우려내고 따르고 마시는 예절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차는 먹고 마시는 음료라기보다는, 삶의 방식이 투영된 우리 삶의 모습이자 문화의 한 부분일 것입니다.

    중국차를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중국인을 보면, 일본의 편의점에 예쁘게 포장되어 판매되는 맛있는 녹차를 보면, 애프터눈 티를 마시자는 영국사람을 보면.. '우리도 결명자차, 오미자차,현미녹차 등 좋은 차 많아'라고 얘기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쓸쓸하고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실상은 그사람들 만큼, 곁에두고 즐겨마시지 않기때문일겁니다.

    인위적으로 우리것 만을 고집하자는 얘기도,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자는 얘기도 아닙니다.
    저도 커피를 좋아합니다만, 다른 우리 마실거리에도 관심을 가져보려합니다.
    커피도 좋고 녹차도 좋고 결명자차도 좋고 유자차도 좋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습관처럼 커피보다 우리차를 좋아하고 마시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더이상 우리차가 만들기 번거롭고 왠지 시대에 맞지않는 불편한 느낌이 아니라, 경쾌하고 상쾌한 느낌의 무언가로 브랜딩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우리차가 돌아오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단절되고 유실되었던 35년을 극복하고 우리의 문화를 후세에 이어주는 일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고 또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먹을거리, 마실거리, 그리고 먹고 마시는데 쓰이는 도구까지, 우리가 우리 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게 되는 그 날이 치욕스러운 35년간의 식민의 역사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날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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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 무역량 1위는 석유, 2위는 커피
    세계최대 커피생산국 브라질-베트남-콜롬비아 (세계생산량의 60%이상)
    커피소비1위 미국 2위 독일 3위 일본 한국 11위(아시아2위)
    일인당 커피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는 핀란드(10Kg 하루 6잔이상)

    한국 1인당 커피 소비량 288잔(인스턴트커피가 80%이상으로 원두커피를 압도하는 유일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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