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s Life/Days

2014.03.20 상암동 구석에서

goldbug14 2014. 3. 20. 15:35

작년, 2013년은 저에게 무척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의리와 연대, 의욕과 욕심으로 시작했던 스마트 폰, 스마트 패드를 위한 어플리케이션 개발 사업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제품디자인회사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으로 차량용 스마트 PC를 만들자고 새로운 회사를 차렸던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기기를 표방한 포터블PC를 만들어 보자.'

그것이 목표였습니다.


신나게 아이디어를 짜내고 제품디자인을 하고 제품에서 돌릴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디자인 했습니다. 

개발과정에서 유통업체와의 송사도 있었지만 우리 것을 한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했습니다.
그런 역경을 거쳐 워킹목업이 나왔지만, 아이패드가 등장하던 날, 우리는 제품을 접기로 했습니다.

소프트웨어와 제품의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아이패드라는 괴물딱지에 도저히 덤빌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아이패드로 쓰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긴 하네요.)

다양한 부품을 대량으로 선구매해야하는 제품개발과정이 얼마나 큰 모험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제품의 출시를 포기하는 대신, 우리는 시선을 어플리케이션으로 돌렸습니다. 

하드웨어는 어려워졌지만, 소프트웨어로 밥벌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어쩌면,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직 소프트웨어의 영역에만 밥벌이의 가능성이 남아있는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저는 디자이너도, 엔지니어도 아닙니다.

그저 디자인이 좋아 디자인 일을 시작해서 디자인 영업을 하고 디자인을 기획하는 디자인 영업자이고 디자인 기획자입니다. 

그런 제가 어플리케이션 개발이라는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인을 다루어봤다는 경험과 기획자라는 타이틀이 받쳐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를 소개하면 다들 그런가보다... 하는 분위기였으니까요.


어플리케이션 개발일을 해보자고 결정하게 한 원동력은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가장 컸습니다.

무모한 일이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라면, 

그 친구들이 서로의 가족을 염려하고 배려할 만큼의 사이라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그렇게 한번 마음먹은 것은 죽이되든 밥이되든 밀고 나가는 것이 남자다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마음먹고 마음을 나누고 살면, 

함께 하는 동료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믿어주고 끝까지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3년에는 오랜시간 쌓아왔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믿음들이 흔들리고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기대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내가 내마음대로 생각해버린, 내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내 마음 속, 내 기대 속의 '그 사람'이라는 허상에게 기대하는 것일 뿐이라는 뼈져린 교훈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2013년을 보내고 2014년을 맞았습니다.


돈이 아닌 가치, 돈으로 치환될 수 없는 조금 더 고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돈을 가치없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당연히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어야만 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내가 일하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목적이 오직 돈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동료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목표를 위해 일하고 함께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 진짜 성공이라 생각했습니다.

설령, 스타트업 프로젝트에 실패하더라도 함께 한마음으로 고생한 사람들은 함께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려워지고 쪼들린 회사는 더 이상 마음 편히 꿈꾸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더군요.  

서로를 힐난하고 모든 잘못된 성과들은 자신의 탓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그래서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으면 아주 치사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분위기가 무척 괴로웠습니다.


홍보 마케팅을 맡아 제약된 권한과 비용, 그리고 언제나 막바지에 일이 뒤집히는 관심(?)어린 태클들과 필사적으로 싸웠던 기억이 새삼떠오릅니다.

당시엔 한번 결정된 내용을 번복하는 것이 관리자로서 정말 불합리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조직을 위해서도 결정된 사항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진행하는 일들을 다양한 관심과 태클에 밀려 번복하고 직원들에게 같은 일을 다시 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그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도 함께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단절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주 교묘히 말이 바뀌어 전달되고 입장을 얘기할 기회들도차 봉쇄되고 사라져버리더군요. 

그렇게 고립되어간 자신이, 자신의 능력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것 같아 또 바보같고 부끄러웠습니다.

저 자신의 자존감은 고립되고 밀려나면서 그렇게 바닥을 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회사를 정리하고, 거세게 몰아치던 마음속의 폭풍에도 이제 조금씩 익숙해져 갑니다.

폭풍은 아직 잠들지 않고 문득문득 고개들어 가슴속을 휘저어놓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젠 정신을 차려야 하기에,

가족을 위해 버텨내고 무엇이든 해야하기에

오늘 상암동 커피집 한 구석에서 혼자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저 지난일일 뿐이라고, 그런 일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날이 빨리왔으면 합니다.